[17] 에티오피아 의료봉사 기행문 (jayou)

이름: 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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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의료봉사 기행문

에티오피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8월 13일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인사를 갔는데 집을 나서며 언뜻 본 어머니의 눈가가 볼그스레하다. 나이 40 넘은 아들 먼 길 떠난다고 마음이 찡한 모양,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인 모양이다. 애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열심히 놀고 있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향하였다.
오후에 서울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한의사외에도 이번 봉사가 국가 보훈처와 공동주관을 하다보니 보훈처 직원, 에티오피아 후원회 신광철씨, 마라토너인 황영조 감독, KBS PD와 리포터, 중앙일보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할 일을 가지고 봉사단에 참가하였으며, 밤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8월 14일 중간 기착지인 두바이를 거쳐 오전에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대사관 직원이 환영을 나왔다.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후에 의료봉사를 할 Black Lion Hospital로 이동하여 진료준비를 하였다.
Black Lion Hospital은 25년 전부터 한국의 슈바이쪄라는 유민철 박사가 진료하고 있는 곳으로 에티오피아에서는 큰 규모의 병원으로 부지가 넓었으며 많은 병동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 정부파견의사인 치과의사도 진료하고 있었다. 병원 식구들이 나와서 환대하였으며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주었으며, 저녁에 교민식당인 서울 레인보우 식당에서 교민들과 같이 광복절 기념식을 가진 후에 민속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민속춤과 노래를 관람하였다.
8월 15일 이미 병원 앞에는 길게 줄을 지어 진료실 입구에서 시작하여 복도를 지나 병원 정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병원 정문밖에도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경찰이 10명씩 나누어 넣어주고 있었다. 나는 예진을 맡아 진료실에 환자를 분배하는 역할을 맡았다. 점심은 교민회나 대사관, 교회 등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병원 내에서 해결하였다. 매일 오전 진료는 9시부터 12시까지이며, 오후진료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하였다. 대체로 5시 30분은 지나야 끝이 났다. 환자가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돌아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관과 참전용사회에서 나누어 준 표가 2,000여장으로 4일간의 진료로는 재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초진으로 단지 침 한번의 시술로 병을 고쳐야 된다는 것인데 간단한 질환은 될 지 모르지만 대체로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포대에 안고 왔다가 진료표를 구하지 못하여 돌아서는 어머니,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들쳐업고 온 남편, 한쪽 정강이 바깥쪽으로 완전히 썩어 내가 보기에 다리를 절단할 시기도 지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1년째 치료받은 적이 없는 사람, 7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 편마비 환자, 아침부터 굶고 비를 맞으며 기다리다 오후 늦게 잠깐의 진료를 받고 가는 사람, 분명히 에이즈 환자인 사람(나중에 현지 의료인 말로는 우리가 본 환자의 50-70%는 에이즈 환자라고 한다) 등등.
8월 16일 오후에 에티오피아의 약품과 식품에 관한 연구 및 질병치료를 위한 임상실험을 하는 Ethiopian Health and Nutrition Research Institute 에서 세미나 발표를 하였다. 소장을 만나 인사하고, 한의학에 관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발표한 뒤 의문점에 대하여 대답해주고, 약품담당 책임자의 안내로 그곳의 연구시설을 둘러보았다. 세미나를 마친 뒤 진료소로 돌아 와 다시 진료팀에 합류하였다. 오늘도 많은 환자가 몰려들고 진료실에서는 정신없이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 기욘호텔에서 에티오피아 보사부 차관이 제공하는 저녁 식사로 그 곳 전통음식인 인젤라를 먹었다. 북처럼 생긴 탁자를 가운데 두고 5-6명이 둘러앉아 보자기를 여니 스펀지같이 생긴 발효시킨 빵이 나온다. 그 빵에다 여러 가지 소스를 끼얹어 먹은 것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식사 후에는 따로 마련된 2층으로 올라가 coffee ceremony를 하였다. 원두 커피를 볶아 소주잔 만한 자기 그릇에 커피를 진하게 끓여 준다. 커피를 한국에서처럼 크림이나 설탕을 타는 것이 아니고, 먼저 바닥에 푸른 풀잎을 깔고 가운데 여인이 앉아 화로 같은 곳에 원두를 볶는다. 볶아지면서 나는 연기가 구수하기도 하고 메케하기도 하다. 커피를 원하면 숯불이 담긴 그릇을 가져오고 거기다 작은 향나무 조각을 넣어 향을 피운다. 향이 피어오르고 조금 있으면 커피를 소주잔 만한 자기그릇에 여러 잔 담아 나온다. 다시 마시고 하여 한사람이 석잔은 마셔야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진하여 먹기 힘들었는데 벌써 적응이 되는지 조금씩 음미하면서 먹으니 괜찮다.
8월 17일 진료를 마치고 한국전 참전용사촌인 코리아 빌리지를 찾았다.
에티오피아는 6ㆍ25때 UN군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자발적으로 한국에 파병하였으며 전사 121명과 부상 536명의 희생을 치루었다. 그 후 1974년부터 1991년까지의 공산정권의 쿠데타와 10여년간의 가뭄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가 변두리로 몰려나 살게 된 마을이 코리아 빌리지이다. 한국의 산동네 판자촌 같은 곳으로 부슬부슬 비를 맞아 가며 오두막 같은 참전용사회 사무실로 가니, 의자 몇 개 놓여져 있는 사무실은 너무 좁아 단원이 다 들어가기 어려웠다.
8월 18일 병원 정문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포기하고 (사실 경찰이 몽둥이로 쫓아 버렸다. 진료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답답하기만 하다. 진료종료시간은 다가오고 환자는 철문에 매달려 들어오려고 밀고 있고, 경찰이 몽둥이로 해산시키려 하자 이리저리 힘없는 늙은이와 환자는 밀려 넘어지고 ) 병원 안에 들어 온 환자는 진료하기로 결정하여 오후 진료를 연장하기로 하였다. 진료 4일 동안 많은 환자를 치료하려고 노력하였지만,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또한 많은 환자를 가슴아프게 돌려보내야 했다.
오후에 참전용사회에서 제공하는 리셉션 장에 갔다가, 저녁식사는 에티오피아의 김창수 한국대사의 초대로 대사관저에서 가졌다. 관저는 옛날 왕족의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아름다운 숲에 잘 꾸며져 있었다.
8월 19일 멀리 이국 땅에서 그래도 불편함이 없는 것은 주위사람이 도와주기 때문이리라. 대사관 직원, 교민회, 교회, 참전용사회, 병원관계자 등등.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분들이다. 오히려 나 스스로 더 열심히 환자를 보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로비에 모이니 출발 예정 비행기가 결항이란다. 이리 저리 연락 끝에 저녁에 출발하기로 하고, 남은 시간을 국립박물관과 엔또또 산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국립박물관에는 발굴된 유골이나 화석, 에티오피아의 고대 왕국에서 현대까지의 역사와 문화재, 에티오피아의 풍습, 의복, 도구 등을 전시하였다. 350만년전의 Lucy라고 이름 붙인 인간 유골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도 있었다. 아디스아바바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엔또또 산은 3000m정도의 해발이라고 하였다.
8월 20일 새벽에 리야드 공항에 도착하여 환승하여 이집트의 카이로에는 11시에 도착하였는데 도시 전체가 우중충한 것이 밝지를 않다.
박물관에는 발굴된 유물이 대부분으로 투탄카멘왕의 황금가면과 그 부장품이 주된 것이었다. 죽은 자를 위한 부장품, 그리고 죽은 영혼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그림, 죽은 자의 생애를 적은 사자의 글 등.
점심 식사 후에 기자의 피라미드로 이동하였다. 쿠푸왕, 카푸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피라미드 안을 구경하고 스핑크스로 이동하였다. 원래 모래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기원전 1400년경에 발굴하고 그 앞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나일강 선상에서 가졌다. 유람선을 타고 전통음악과 춤을 보고 들은 후에 호텔로 돌아오니 아늑하다. 넓은 정원을 가진 호텔로 오랜만에 편안하고 쾌적한 휴식을 가진다. 호텔 정원 가운데에 넓은 야외 수영장이 있고, 붉은 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고, 대추야자나무가 높게 솟아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고, 몇몇 사람은 시원한 물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에 야외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였다.
21일 출국수속을 마치고 10시경에 카이로 공항을 이륙하여, 두바이를 거쳐 22일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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