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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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을 읽고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을 읽고

 얼마 전 정권이 바뀌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집회를 열어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경찰의 강력한 진압에 심지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면서 마침 스탠리 코언이 저술하였고, 조효제가 옮긴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에서는 주로 국가가 대규모로 시행한 인권침해인 민간인 학살, 이민족 학살, 반정부인사의 고문 및 학살 등이 국가와 관련자 및 대중이 부인하는 태도에 대하여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침탈과 종군위안부 등에 대하여 아직 부인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보도연맹사건, 제주 4.3사태, 광주 민주화 운동과 독제 정권하의 각종 의문사 등 불법적인 학살이나 살인 혹은 사건 등이 일어났으나 아직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거나, 가해자는커녕 피해자조차 조사되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더구나 현 정부 들어서는 예산과 기구조차 줄이고 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심되는 가해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계속 우기고, 피해자는 자기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시인 받지 못하였다면 화해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국가는 법에 의하여 운영되어지며, 법을 어긴 자는 법에 의하여 처리되어야 하며, 불법으로 처리 되어서는 아니 된다. 또한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집단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권익을 위한 통치를 하거나, 또한 정치와 범죄를 제도적으로 접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코언은 법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인권의 식민화를 우려하는데 이미 대한민국에도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 없다고 볼 수 있는가 ? 일제 식민시대의 찌꺼기 같은 법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지 않는가? 제도적으로 고문이나 인권침해를 뒷받침하는 법률들, 관료제도, 군대내의 폭력, 오로지 공부만 하는 학교 교육, 이방인이나 소수 민족에 대한 멸시, 노약자에 대한 폭력적 언어 등 아직도 주위에는 많은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

  진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왜곡되지 않은 성공과 실패를 후손에게 전하여야 한다. 과거는 공식적 진실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수치스런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기 보다는 드러내어 미래에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진실규명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 제도들이 재등장하고 그저 명령에 복종하였을 뿐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거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거나,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우기거나, 피해자 존재를 부인하거나 하더라도 우리는 잘못 한 것은 잘못하였다고 시인하여야 한다. 가난하고 불안정하고 폭력으로 찌든 곳에서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타자들을 그저 지켜볼 뿐인 것인가 ?

 그리고 미디어를 통하여 우리는 고통과 번민의 풍경 한가운데 들어와 타인의 고통을 엿보는 관광객으로 변하여 버렸고, 인간의 고통은 일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상품이 되었으며, 고통 받는 사람은 일개 대상으로 전락하여 소비자용 상품으로 전환되어 버렸고, 대중매체는 독점적으로 인간의 고통과 인권침해의 문화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더욱이 미디어가 무엇을 선별하고 가공하고 보도하는 가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보도의 범위는 선택에 좌우되며, 기사 가치는 그 사건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달여 있으며, 특히 동맹국보다 적국의 인권침해가 더 보도하기 좋은 소재가 되어 동맹국의 인권침해는 덮어두고, 적국의 인권침해는 과장되게 포장되어 단지 정치선전물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짓과 말장난과 신념이 한데 뒤섞이고, 오랜 관행과 문화적 학습, 세뇌, 거짓말의 일상화, 변심 등이 쌓이면 자기 거짓말을 스스로 믿게 되며 자신이 현혹된 상태에 있음을 믿지 않게 되는 것으로 적응, 일상화, 용인, 인내, 공모, 은폐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공직자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인권침해를 해명한다. 홀러코스터는 대부분 관료적 조직과 효율성, 사회적 기능의 분업, 윤리적 무관심 등에 기인한 정신 상태로 인하여 일어난다. 진실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게 다 이유가 있을 거야 ”, “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을 거야”라며 자기기만에 빠져 인권침해를 정당화 하며, 오히려 피해자의 직장을 차지하고, 버리고 간 빈집을 접수하고, 가재도구를 훔치면서, 처형장을 구경한다.
 
 또한 모든 고문 방식은 다른 언어체계를 고안한다. 그리하여 끔찍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평범한 어떤 것으로 전환한다. 전도된 형태의 언어로 고문을 표현하여 피해자에게는 더욱 고통스럽고 일부 가해자에게는 가학적 쾌감을 주며 명령체계내 사람들에게는 그런 짓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준다.

 무조건적인 복종 또한 인권침해의 원인이다. 하급자들이 복종함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조건은 첫째 상급자의 폭력 승인, 둘째 탈인간화, 셋째는 일상화이다. 대부분의 인권침해는 군대 같은 조직에서 시작되며, 일상적이고 분절된 업무가 전체 업무의 궁극적인 기능이나 최종 산물과 분리되면 인간의 도덕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또한 집단병리현상에 함몰돼 독선적인 피해자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자기네 신화와 폭력의 의례에 빠져 있어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 집단바깥의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는다.

 통솔력 있는 지도자는 실제 상황보다 더 나은 희망을 사람들에게 불어 넣을 줄 안다. 하지만 인권침해를 저지른 지도자는 긍정적 환상(특히 자기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거창하게 품고 극히 잔혹한 짓을 저지른 자기기만자이다. 무쏠리니, 차우셰스쿠, 이디 아민, 모부투 같은 사람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자존심, 장대한 포부, 자기 의지로 못할 일 없다는 확신, 비현실적인 낙관 등이 대단히 강했다. 그리고 국가가 주도하여 인권침해를 하고 그 사실을 부인한다. 대중은 자기기만에 빠져 지도자나 권력층은 인권침해를 정당화할 만한 사실을 알고 있으려니 하고 고분고분 따라 믿었다.
 그리고 피해자 존재를 부인하고, 특유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비교하며, 반박논리를 제시하고, 부분적인 사실만 시인하고, 공간적 예외성과 시간적 한정을 주장하고, 책임과 손해 끼침을 부인하고, 비판자를 비판하며, 높은 차원의 대의명분을 주장하고, 공모와 은폐를 한다.
 
인권침해자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였는가 아니면 단순히 명령에 복종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죽이고 살상하고 고문하고 강간하였다는 식의 해명을 그 나라 사람과 문화와 권력이 용인하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이 횡행하는 것을 알지만 그 누구도 크게 개의치 않으면, 일종의 부인의 문화가 정착되어 가며, 점차 자기들이 만들어낸 허위를 실제로 믿기 시작한다. 제도화된 위선과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인권침해는 없을까 ? 아직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를 하지 않고 통치를 하고, 학생들을 공부하라고 밤늦은 시간까지 강제 수용하는 것부터 빈민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까지 권력과 자본에 의한 인권침해는 더욱 가해지고 있다.

 코언은 고통과 절망에 빠진 타인을 돕고 구조하는 의무가 사회의 주도 이념으로 격상된 도덕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먼 옛날 이 땅에 세운 건국이념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코언 또한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인류의 우애로 이해하며 정치적 연대행동으로 표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의 보다 깊은 의미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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